전날 무리를 한 탓인지 늦잠을 잤다. 안좋은 기억이 자꾸 떠올랐지만 계속 마음에 품고 있어봤자
나만 손해기 때문에 액땜한 셈 치기로 하고 민박집을 나섰다.
오늘의 계획은 우에노(上野)-아사쿠사(淺草)-아키하바라(秋葉原) 였다. 전철을 타고 먼저
우에노로 향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우에노 동물원이 휴일이라는 것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별 수 없이 역으로 돌아와 긴자(銀座)선을 타고 아사쿠사로 갔다. 전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스미다(隅田)강이 보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어간 끝에 아사쿠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통은 카미나리몬(雷門)으로 들어가 나카미세 토리(仲見世通り)를 지나 센소지(淺草寺)로
가게 된다는데, 나는 또 어디서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는지 엉뚱하게도 반대편에 있는 니텐몬
(二天門)을 통해 들어왔다.-_-
어쩐지 오래 걸린다 했더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매일 이래서야.
스미다 강 위로 배가 지나간다.
아사쿠사 가는 길에 한장.
니텐몬.
아무튼 안으로 들어오니 참배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동전을 던지는 사람, 기도를 하는 사람...
평소에 절이나 고궁 같은 곳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이 곳에서는 묘하게 들뜬 기분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아사쿠사 신사(神寺)와 센소지를 둘러 보며 가다 보니 나카미세 토리가 나왔다. 쭉
늘어선 상점가엔 기념으로 사두고 싶은 물건들도 많았지만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거기에 카메라의 배터리도 떨어져 가기 시작했다.
아사쿠사 신사의 모습.
안을 들여다 보았다.
에마(繪馬)라는 소원을 적는 나무판이다. 원래 돈내고 사는 건데 아무것도 안써져 있는 에마가
있길래 슬쩍 내 이름을 적었다.-_-
나카미세 토리로 가는길.
나카미세 토리 안에서. 배터리 부족으로 많이 찍지 못했다.
할머니 도와줘요!! 살벌하게 달려드는 비둘기떼.
내 어깨에 앉은 녀석-_-
언더테이커(?)의 등장.
잉어가 헤엄친다.
돌아다니던 도중에 사먹었던 빙수. 한국의 팥빙수와는 달리 얼음을 갈아서 과일 시럽 뿌리면 끝이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볼만한 것들은 다 봤다고 생각한 나는 아사쿠사 옆에 있는 하나야시키
(花やしき) 유원지로 향했다.
하나야시키는 사쿠라대전에서도 아사쿠사와 함께 곧잘 등장하는 곳으로, 유원지로 위장된
제국화격단의 지부가 있다는 설정이다. 아사쿠사에 온 김에 그 실물을 한번 보고 싶었다.
아사쿠사를 나와 조금 가니 곧 하나야시키 유원지가 보였다. 기대감에 부풀어 입장료 900엔을
내고 안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곧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나름대로 하나야시키를 디즈니랜드의 대용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의
기대를 비웃듯이 유원지 안은 매우 비좁았고, 대부분의 놀이시설은 어린이 취향이었으며, 그에
걸맞게 유원지의 ⅔를 잠식하고 있는 것 역시 어린이들었던 것이다.
잠시 본전 생각을 하던 나였지만, 곧 '이곳은 성지다. 난 이곳을 순례해야 할 의무가 있어' 라는
말도 안돼는 사명감에 불타오르며 유원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미 카메라의 배터리는 다
떨어진 뒤였다.
유원지 내에 있는 상점에 들어가 1회용 카메라를 샀다. 피같은 돈이 또 허공으로 날아갔지만
여기까지 와서 사진을 안 찍을 수도 없었다.
하나야시키 유원지 입구.
티켓 자판기.
유원지 안의 모습. 아래는 하나야시키의 역사에 대해.
일단 들어온 만큼 뭔가 놀이기구라도 하나 타야되지 않을까 싶어서 유원지를 둘러보았다.
그럭저럭 탈 만한 것들은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렇다고 아이들 사이에 껴서 회전목마
같은 걸 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스카이 쉽' 이란 걸 발견했다. 공중으로 유원지 안을 일주하는-롯데월드의 풍선비행
같은-놀이기구였다. 아이들만 가득한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주위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기에
-_- 이걸 타기로 했다.
일주라고는 하지만 유원지 규모가 작기 때문에 탑승시간도 짧았다. 스카이 쉽에서 내려
유원지를 조금 더 돌아다니다 결국 다시 아사쿠사로 돌아왔다.
스완. 이곳의 어트랙션은 대개 이 수준이다.
리틀 스타.
메리 고 라운드.
뿅뿅.
한숨 나오는 놀이기구 가운데 독보적인 빛을 발하는 스페이스 샷.
내가 탔던 스카이 쉽. 꼬맹이들 사이에서 이걸 타는 것도 고역이었다.
스카이 쉽에서 바라본 유원지의 모습.
고장난 채 방치되어 있던 건담.
동전을 넣으면 일정시간 동안 타고 다닐 수 있는 팬더.
외국인 가족들의 모습도 종종 보였다.
아사쿠사로 돌아와 나카미세 토리 등을 다시 돌아보던 중 유카타를 입은 아가씨들을 보았다.
소심한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사진을 부탁했고, 그녀들은 수줍어하면서도 허락해
주었다.^_^ 사진 촬영을 마친 뒤에 아키하바라로 떠났다.
다시 나카미세 토리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유카타 입고.
사진을 부탁하자 어쩔 줄 몰라하던 아가씨들.
아키하바라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왔는데 화려한 전자상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약간
당황한 나는 잘못 온건가 했지만 내가 내린 곳은 아키하바라가 맞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내렸던 히비야(日比谷)선의 아키하바라 역은 아키하바라 중심가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어찌어찌해서 걸어가다보니 하나 둘씩 상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디지캐럿으로 유명한
브로콜리의 게이머즈라던가, 소프맙, 리버티 등의 게임 매장들도 있었다. 하라주쿠의 북오프
에서도 그랬지만 한국에 있을때는 꿈만 꾸던 일이 현실이 되자 눈이 핑핑 돌았다.
일단 한 카메라샾에 들어가 충전 어댑터를 구입했다. 1회용 카메라 가격도 장난이 아닌데다가,
앞으로 찍을 사진이 한두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주쿠에서 5000엔이었던 것을, 이곳에서는
3000엔에 팔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게임매장 순회에 나섰다. 일반 게임은 이미 북오프에 갔을 때 많이 구입했었기
때문에, 구하기 힘든 한정판들과 한정판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찾고 있던 '하나구미 대전
컬럼스 2'(이하 컬럼스 2)를 찾아다녔다. 특히 컬럼스 2 같은 경우는 예전에 오사카에 가는
친척에게 구해달라고 부탁했었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서 반드시 찾고 말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두어군데 뒤지면 있겠지 라고 생각한 컬럼스 2가 좀처럼 나타나질 않았다. 점점 시간은
흘러가는데 기껏 아키하바라에 와서 컬럼스 2만 찾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절망적인 마음이 되어 헤메고 헤메고 헤멘 끝에 나는 트레이더의 한 지점에서 드디어
컬럼스 2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컬럼스 2를 구입하고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다시 각 매장들을 돌아보았다. 시간을 많이 뺐기긴
했지만 아직 어느정도 남아있었다. 그 밖에 찾고 있던 소프트와 주변기기들을 구입한 뒤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대부분의 매장들이 폐점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여기서 돌아가기로
했다.
아키하바라에서. 태고의 달인을 플레이하는 아저씨. 흘러나오는 곡은 '날아라 건담'
므흐흐.. 1회용 카메라도 필름이 떨어져서 아키하바라에선 몇장 찍지 못했다.
아니 저분은 세가타 산시로!!
새턴 해라!!!!!ㅜㅜ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하루였다. 어렵게어렵게 컬럼스 2를 구한 건 좋았지만 그 덕에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키하바라에서의 시간은 더 즐거웠을 텐데.
카메라 배터리가 떨어져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한것도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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