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온지 이틀째, 오늘은 가요쇼의 날이다. 앞서 여러 도시에서 방황을 해댔지만 이번 여행의 목표 역시 오직 가요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 공연은 한국 최고-일본에도 몇 없다고 생각-의 가요쇼 전문가이신 귀축소년님(이하 귀축형)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또한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가요쇼는 오후 공연이라 시간이야 충분했지만, 어제 아키하바라에서는 보지 못했던 CD들이나 찾아볼까 하는 마음에 아침 일찍 신주쿠로 향했다. 그것 말고도 몇가지 할 일이 있기도 했다.
신주쿠에 도착한 나는 일단 국제전화카드를 사기 위해 편의점부터 찾았다. 모레 오사카에서 타야 할 신모지행 페리 문제였는데, 여행사 측에서 건네준 서류에는 페리의 예약증이 누락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행사에 문의해야(따져야) 할 상황이었다. 부산에서 사가지고 온 카드는 이미 다 썼기 때문에 새 카드가 필요했다.
카드를 사들고 공중전화로 갔다. 그런데 전화를 하려고 보니, 카드에 쓰여져 있는 설명으로는 도저히 사용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드에 쓰여 있는대로 몇번이고 번호를 고쳐 눌러 보았지만, 잘못 걸었다는 메세지만 나올 뿐이었다.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 카드 사용법을 모르겠다고 하자 꽤 두꺼워 보이는 안내서를 꺼내주길래 그걸 가지고 다시 전화를 하러 갔다.
하지만 도움이 안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안내서가 아무리 자세해도 거기에 한국의 국가번호 같은 건 나와 있지 않았으니까. 결국 카드사에 전화를 걸어 국가번호를 물어봤고, 82라는 답변을 받았다. 앞으로 일본여행 계획이 있으신 분들 확실하게 기억합시다. 한국 국가번호는
82번.
카드 문제를 해결하고 소프맙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길래 신작이라도 나왔나 했는데, 단지 아직 개점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기대하게 만들었던 행렬
소프맙 및 트레이더 등지를 돌아본 뒤, 북오프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타고 하라주쿠로 갔다. 북오프야 신주쿠에도 있지만 이 번잡한 신주쿠에서 정확한 위치도 모른채 찾아갈 엄두가 나질 않았기 때문에, 시부야와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하라주쿠점에 들렀다가 가요쇼가 열리는 아오야마 극장까지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언제나 북적대는 타케시타 토리의 인파를 뚫고 북오프로 향했지만 찾고 있던 CD는 몇장 없어서, 아쉬운대로 있는 것이나마 집어들고 하라주쿠를 떠났다. 이곳에서는 작년에 한참 헤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길을 찾아가자 시부야에는 금방 도착했다. ..시부야에는.
분명 눈앞에 있는 건물에 '시부야 XXX' 라는 간판이 붙어 있으니 여기가 시부야는 맞을 텐데, 시부야 역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조금 큰 길로 나가서 표지판이라도 살펴보려고 했지만 온통 고층건물 투성이라서 그것도 쉽지 않았다. 간신히 길을 물어 시부야 역을 찾아갔지만, 약속시간인 3시 40분까지는 15분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쿄에서도 나의 삽질은 계속된다
시부야 역은 찾았지만, 여기서 아오야마 극장을 찾는 것도 막막했다. 만반의 준비를 해간다면서 가져온 지도 같은 건 이미 아무 쓸모도 없었다. 또 옆길로 새다가 편의점 직원한테 묻고, 주차요원 아저씨한테 물으면서 드디어 아오야마 극장에 도착했다. 날씨 탓인지 눈물이 나려고 했다..
여기다 여기..
원래대로라면 이곳에서 3시 40분에 귀축형과 만나야 했지만, 내가 늦어버린데다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에 찾아 볼 여유도 없이 나도 대열에 합류했다. 극장 전경이라던가 코스프레 등 찍고 싶은 사진들도 많았지만 별 수 없었다. 주머니에 고이 모셔져 있는 티켓을 괜시리 몇번씩 꺼내 이게 정말 오늘 공연 맞나 찢어지진 않았나-_- 확인하던 중 다나카 코헤이 선생님을 필두로 한 출연진들의 악수회가 시작되었다.
악수회
오렌지색 옷을 입으신 분이 스야마 아키오씨
악수회가 끝나자 드디어 극장 문이 열리고 입장이 시작되었다. 극장 안에 들어서 좌석을 확인했는데, 옆자리에 있어야 할 귀축형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뭐 공연 시작 전까지는 만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에 일단 짐을 내려두고 곧장 매점으로 뛰었지만, 구매리스트에 있던 넥타이는 이미 매진. 이 사람들이 회사에서 매고 다닐 것도 아니면서..(그러는 당신은?) 결국 홧김에(?) 맘에도 없던 화투를 포함해 몇가지 물건을 구입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귀축형과의 감동의 出會い.
내가 구입한 것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제국극장 방석, 공연 팜플렛, 하나구미 부채, 쟝폴 퍼즐, 하나구미 화투
2006년도 모두 쿠미코 LOVE!!
귀축형은 여기 오기까지 잠 한숨 제대로 못잤다며 피곤함을 호소했고, 혹시 공연 중에 졸지나 않을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피웠다. 가요쇼가 여럿 잡는구만.. 귀축형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드디어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올해도 또 왔구나' 라는게 이제서야 실감이 났다.
다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몇줄.
...출산 문제로 여름 공연에 불참하셨던 후치자키 유리코씨는 언제나처럼 기운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3분 쇼핑의 사쿠라 & 코란 콤비 부활!
...여름 공연에 스페셜 게스트로만 참여하신 소노오카 신타로씨는 이번엔 아예 불참.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이라고, 댄디보스의 빈자리를 메우기라도 하듯 니시무라 요이치씨는 공연을 거듭할수록 파워 업(?). 신파랑새에 이어 시종 무게잡힌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타게다 시게히로씨의 '형님 어째 갈수록 강해지시는 것 같아요!!ㅜㅜ' 라는 대사는 정말 처절했다.
...핀치에 몰린 오오가미들을 구하기 위해 아이리스가 나섰다. '아이리스가 모두를 지킬거야!' 엇, 뭔가 보여주려는 건가? 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울려퍼지는 'Iris~~' 그리고 등장하는 거대 쟝폴. 이번에는 다른 걸 보고 싶었는데.
...가와오카 당신은 최고야!!^^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자 귀축형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 오리히메 어디 갔지?' 다시 한번 살펴보니 정말로 무대 위에 오카모토 마야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리히메란 캐릭터가 가요쇼 내에서 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역시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모처럼 하나구미 8명이 모두 모였다고 생각했는데.. 오카모토씨의 불참 이유는 지금도 불명.. 그리고 왜 1막에서는 눈치를 못챘는지도.
...여러가지 볼거리들이 있었지만 2막 최고의 화제는 역시 스미레 챠챠챠였다. 타카노 우라라씨의 すみれ♨♨♨와 토미자와 미치에씨의 스미레 챠챠챠. 이 부분은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공연을 보는 수 밖에는..
...우리의 앞 좌석에는 부부인지 커플인지 남매인지 알 수 없는 남녀가 앉아있었는데 여자가 게키테이 안무를 처음부터 끝까지(간주부분까지!) 따라하는 열정?을 보인 반면 남자는 공연 내내 졸고 있었다. SS석이 9000엔 짜린데..
...뒤늦게 밝히지만 7일은 DVD 수록일이었다. 한마디로 DVD를 구입하시는 분들은 이 날 공연을 보게 된다는 것.
아이리스!!!!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와 귀축형. 히로이 오지가 우리 옆을 지나갔으니 얼굴도 잘 찾아보시길.^^;
주절주절 떠들긴 했는데 사실 공연에 대해서 이렇다저렇다 평할 마음은 없다. 이 분야의 권위자(?) 귀축형과 함께 한 공연인 만큼 내 얄팍한 지식으로 제대로 평가할 자신도 없고^^; 하지만 절대 후회없는 세시간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공연이 끝난 뒤, 극장 안을 조금 둘러보고 앙케이트 등을 작성한 뒤 밖으로 나왔다. 공연 시작 전 귀축형이 찜(?)해뒀던 스바루 & 푸치민트 커플의 코스프레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귀축형의 옆에서 나도 열심히 셔터를 눌러봤지만, 역시 똑딱이 디카의 한계로 흔들린 사진만 나올 뿐이었다.. 다음번엔 꼭 삼각대를ㅜㅜ
정말 매너 좋은 분들이었다. 촬영을 포기하고 뒤돌아서려는 나에게 찍지 않아도 괜찮겠느냐면서 끝까지 포즈를 취해주셨음! 근데 사진이 저렇게 나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아오야마 극장
가요쇼의 유령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우리는 귀축형의 친구분을 기다리느라 여전히 극장 앞에 서 있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날 계획을 물었더니, 별 일정은 없고 아키하바라에 갔다가 밤에 귀국할거라고 했다. 난 그럼 그 전에 같이 태정낭만당에 들르는 건 어떻겠냐고 귀축형을 꼬드기기 시작했고, 형이 생각하고 있는 사이 친구분이 도착했다. 셋이 함께 시부야 역으로 향하면서 내일의 일정에 대해 논한 끝에 일단 내일 신주쿠에서 만난 뒤, 태정낭만당->아키하바라를 거쳐 각자 갈 길을 가기로 했다. 이윽고 시부야 역에 도착해 친구분과 술을 마시러 간다는 귀축형과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에 바로 민박으로 가지 않고 혹시 하는 마음에 이케부쿠로로 향했으나 태정낭만당도 사쿠라카페도 간발의 차이로 영업시간이 지나 결국 허탕을 치고 돌아오고 말았다. 조금만 빨리 올 걸~;;
뭐 어찌 됐든 이번 여행의 목적도 달성했다. 지금껏 삽질을 했던 포크레인을 탔던간에, 나의 여행은 성공한 것이다.
민박에서 마셨던 츄하이. 맥주 옆에 있길래 그냥 집어들었는데, 이걸 마셨더니 잠이 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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